근본 판타지란 무엇인가?
사실 국내에서 '판타지'하면, 반지의 제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유명 TRPG D&D도 톨킨의 영향을 받았고, 해당 시리즈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들어봤을거다.
하지만, 연대순으로 다시 판타지 장르의 흥행을 돌아볼 때, 톨킨의 작품만이 판타지의 본류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국내에서는 일방적으로 판타지=반지의 공식이 성립되어 있는데, 이는 그 이전 흥행작들이 국내에는 시대적&정서적 한계로 마이너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뭐 판타지 장르의 본류를 따지면 길가메시 서사시, 고대 그리스 희곡, 아라비안 나이트, 베오울프, 중세 기사 문학 등 다양한 것들이 있겠다만, 현대 판타지의 정의에 부합하는 작품은 1800년대 중반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1858년 발매된 스코틀랜드 작가 조지 맥도날드의 'Phantastes'가 최초의 판타지 소설로 여겨지며, 판타지 장르는 19세기까지 크게 흥행하였다.
이 시기의 판타지 작품들은 보다 어린 청소년 계층을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반적으로 오락용 소설로 여겨졌다.
1920년대 최초의 판타지 소설 잡지가 출판되었고, 러브크래프트와의 친분으로도 유명한 로버트 E. 하워드의 '코난 사가'가 펄프 픽션에서 대박을 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시기적으로는 흔히 양판소라 까이기도 하는 '소드&소서리' 장르 판타지가 먼저 등장하여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소설 잡지에서는 판타지 이외에도 SF 소설을 함께 기재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장르의 부흥에 영향을 끼쳤고, 판타지와 SF 사이의 혼합이 시작되었다.)
소드&소서리
검을 사용하는 캐릭터나 마법 등이 소재로 사용되며, 영웅적 주인공의 모험담을 그리는 것이 주된 플롯이다.
비슷한 말로 영웅 판타지(Heroic Fantasy)라고도 하며, 서양 판타지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실제 사회, 계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창시자격인 하워드의 영향으로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생물의 요소를 차용해 어둡고 폭력적인 경향이 있다.
그러나 히로익 판타지(소드&소서리)가 장악한듯 보이던 판타지 판은 1960년대 톨킨의 반지의 제왕,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등 '하이 판타지' 작품들이 등장하며, 격변을 겪게 된다.
이러한 '하이 판타지' 세계관의 등장은 실제 세계와 완전히 다른 규칙을 가진 대안적인 허구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경향을 심어주며, 흔히 '설딸'로 불리는 길을 열어주었다.
판타지 세계관에 독자 언어, 문자를 사용하는 등의 풍조가 이 시기 정립된 것이다.
하이 판타지-로우 판타지
용어 자체가 현대에 비일관적인 방식으로 정립되었기 때문에 구분 자체가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경향이 있다.
하이 판타지는 완전한 공상 세계, 로우 판타지는 현실에 기초한 세계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구분이 있는데, 한 작품 내 혼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꺼무에서는 나니아 연대기를 로우 판타지의 대표작이라 소개하지만, 나니아 연대기는 서구권에서 하이 판타지의 초석 중 하나로 여겨진다.
특히나, 이후 설명할 D&D에서 등장한 하이-로우 파워 개념이 용어를 오염하며 갈수록 혼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에는 소드&소서리 장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판타지 전쟁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기존 테이블탑 워게임 취미에 판타지 속성이 혼합되며 기존 규칙을 바탕으로 개발된 롤플레잉 규칙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1974년 최초의 상업적 롤플레잉 게임인 던전 앤 드래곤이 등장하는것으로 이어진다.
아직 워게임의 흔적을 벗어나지 못했던, D&D는 1977년 재판 당시 이러한 역학을 제거하며 개별 캐릭터를 조종하는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1970~80년대 판타지 붐
1972년 엘릭 사가, 1975년 몬티 파이썬의 성배, 1982년 코난 더 바바리안, 1986년 하이랜더 등 판타지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음.
1977년 스타워즈가 등장하며 SF 장르의 인기 또한 크게 증가하였으나, 이러한 영향력은 북미 지역에 한정된 경향이 있었고, 완구-게임 시장에서는 여전히 판타지가 좀 더 영향력이 강했다.
한쪽에서 소규모 영웅의 이야기를 중점을 두는 동안, 1983년에는 판타지 '워게임'의 특성을 더욱 강화한 최초의 상업적 판타지 미니어처 워게임 워해머가 등장하였다.
D&D 붐에 편승하여 소규모 집단의 전투에 관심이 집중된 사이, 판타지 종족 사이의 대규모 전투라는 블루오션을 차지한 것이다.
좀 더 간편하고, 적은 비용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D&D가 북미권에서 흥행하는 동안, 워해머는 영국과 유럽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다만, D&D나 워해머나 판타지 장르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둘 모두 상업적인 '게임'으로 설계된 것이지, 고유하고도 흥미로운 세계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에, 기존 작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장르 문법적으로 D&D가 소드&소서리, 워해머가 하이 판타지에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세계관은 서로 정반대로 차용하였기에 두 작품 모두 태생적인 비틀림을 가지게 되었다. (D&D는 반지의 제왕, 워해머는 엘릭 사가)
엘릭 사가
영국의 작가 마이클 무어콕의 연작 시리즈로 1961년부터 1991년까지 진행되었다.
60~70년대 SF에서 등장한 뉴 웨이브 사조를 판타지에 도입하였으며, 그 이전에 크게 부각되지 않던 히로익 판타지의 도덕적 모호함을 강조하였다.
멀티버스의 개념을 작품에 최초로 도입한 작가 중 하나이자, 질서와 혼돈 사이의 투쟁이라는 소재를 처음으로 대중화했다.
현재 존재하는 불운하고, 변덕스러운 안티-히어로들은 직간접적으로 엘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음. (제이미 라니스터, 마블 블랙나이트 등)
이렇게 성장한 판타지 장르는 이후 90년대 비디오 게임의 시대가 찾아오며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비디오 게임의 시대에는 이전에 비해, 게임을 통해 퍼져나가는 경향이 강력해졌기 때문에, 이전처럼 소설/영화가 아닌 게임의 파생 설정이 더욱 흥행하게 되었다.
D&D 등 TRPG에 영향을 받은 던전 RPG 게임들이 JRPG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고, 워해머와 같은 테이블탑 미니어처 워게임은 RTS 장르와 SRPG 탄생의 근간이 되었다.
- 나온 연도를 기준으로는 칼들고 설치는 양판소가 원조에 더 가까움
- 국내에 유입된 경로 기준으로는 반지 영향 받은 D&D가 더 유명해 K-원조임
- 초기 비디오 게임은 보드 게임의 영향을 많이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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